인간의 존재와 자유.
니체 다음의 철학자를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다소 추상적인 삶의 의미와 자유를 이야기 했던 니체에서 좀 더 구체적인 고민을 하다가 사르트르로 넘어오게 됐다.
불안
타인은 지옥이다. 남의 평가에 휘둘리는 순간, 남이 만들어준 역할에 갇히게 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무언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가 집중을 어렵게 하곤 한다. 실제로 직장이 없는 채 지낸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구직을 적극적으로 하는 중이라면 더 불안해질 수 있다.
이런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불안을 직시하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있다.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제어하려고 할 때 불안이 형성된다. 그 중 하나는 타인의 시선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고민하면서 내 자유가 사라지게 되고 끊임없이 계산하며 행동하기 때문에 불안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쉽지 않다. 타인에 의해 휘둘리기 때문이다.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에 대해 인식을 바꾸는 데에서 불안을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이 팀이 날 필요로 할까?를 걱정하는 것 대신, 나는 이 팀에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라는 고민을 택하는 것이다.
선택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내 존재를 정의한다.
니체는 '너 자신을 창조하라.'라는 다소 추상적인 메세지를 줬다면 사르트르는 내가 내렸던 선택과 행했던 행동으로 의미를 만들라고 한다. 사르트르의 '인간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이 무슨 말일까?
현실적으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많은 것들로 내가 규정된다. 일단 난 한국에서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았는데 한국인이다. 태어나보니 한국이었고 이로 인해 난 한국인이 된 것이다. 미국에서 살길 선택한다고 해서 살 수 없다. 현실엔 나라라는 경계가 있고 비자라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데 인간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수많은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이 조건들은 이미 주어진(given) 것들이다. 단적으로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죽음'이라는 것 또한 주어진 것이며 인간인 이상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죽음처럼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수많은 것들이 주어진다. 국적, 부모, 자라나는 주변 환경 등. 이러한 것들은 선택하지 않은 사실성(facticity)이다.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다. 주어진 사실성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개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인 것이다.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조차도 네가 그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것이다.
위안
내 고민을 가지고 철학을 대했을 때, 좀 더 몰입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한국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속으로 불평하고 있었다. 왜 어렸을 때 유학을 가지 못했을까 아쉽게 생각하곤 했다. 근데 인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레버리지 삼아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자산 중 하나인 것이다. 이 경험은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영어 공부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진 않지만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타인의 시선을 아예 신경 안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인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선을 신경쓰는 것과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종속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보다 내 기준, 나 스스로의 인정을 우선시 하고 타인의 시선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마무리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질문을 통해 내 기준을 정해야 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니체와 비슷하게 마무리하게 됐다.